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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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녀교육의 보리고개
2015년 12월 27일 10시 27분  조회:5839  추천:3  작성자: 최균선
                               자녀교육의 보리고개
 
                                      진 언
 
    교육학은 아이들의 최적의 교육시기는 6ㅡ9세이전으로서 기본상 일생의 학습과 행위습관이 결정되며 12-15세는 고정되는 시기로 잡고있다. 만약 12세 이전에 량호한 학습 행위와 습관을 양성하고 본년령단계에 고착되면 기본상 일생을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쓰고있다. 말하자면 아이가 15세이전에 바람직한 개성과 학습행위 습관을 양성하였다면 한평생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동시에 만약 전기(소학계단)에 바르게 양성되지 못하고 이 년령단계 혹은 마지막 수정단계를 놓치면 나중에 아무리 개진하려 애를 써도 별로 희망이 없다. 그러므로 아이의 적성에 걸맞게 인도하여 심신상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인도하면서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해야지 어른의 욕망대로 주물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소학교 3학년때까지만도 앉으라면 앉고 공부하라면 공부하던 손자놈이 12세가 되니 알게 모르게 변하는것을 보고 놀랐다. 드디어 자녀교육의 첫보리고개-역반현상이 나타난것이다. 옛말에 무릎아래 자식이라고 했다. 사춘기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하는 이 년령단계는 아이의 일생을 결정하는 전환시기라 자못 신경이 곤두서는 때이다.  
    생리적, 심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런 역반현상에 뾰족한 교육방법이 있을것인가? 더구나 전국을 석권하고있는 응시교육이 아이들의 봉페식계통을 헝클어놓고 인간의 기본심리와 정감수요에 위배되게 각종 강제적수단으로 학생들을 학습하도록 핍박하기에 상황은 더욱 꼬일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가급적으로 유형무형의 반항의식이 증강되는것은 확실히 일거에 풀어낼수 없는 난제이다.
    물론 아이에 따라 반항방식이 다르긴 하다. 어떤 아이는 개인에너지가 풍부하고 사유가 활약적이며 개성 또한 강하여 무엇이나 과감히 해제끼는 기질이므로 여타의 애들보다 더 일찍 반항이 시작된다. 2분법으로 생각하면 될성부른 싹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우리의 교육체제속에서 이런 아이들이“문제아”로 되여 교원의 눈에 나면서 도태되기 시작하기에 나중에 십상팔구 사회실패자로 전락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한것은 이런 애들이 외국의 천부교육계획체계속에서 공부한다면 가장 중시받는 학생이 되고 가장 우수한 교원을 배치하여 전문적으로 배양하는데 커서는 동량지재들이 되거나 사회정영들이 된다는것이다. 이는 심사숙고를 자아내지 않을수 없다. 물론 절간마다 자체의 법규가 있기에 그에 따라해야 하겠지만 횡적으로 비교해보면 교육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현대적이 못되지 않는가싶다.
    우리의 귀여운 애들, 순돌이들은“순복도구”로 양성되여 왕왕 너무 소심하고 무슨 일에서나 주저하는“겁쟁이”들로 될수밖에 없다. 이 점은 불면 날가 쥐면 꺼질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손자에게서 날로 나날이 절감하게 된다. 하긴 조부모들이 키 우는 아이들에게서 생기는 통병이지만 스스로 성찰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순돌이던 아이가 자아의식에 눈을 뜨게 되고 그에 수반하여 신체와 심리상에서 훌쩍 커버린후 반항기에 들어서면 어찌될것인가 하는 우려심이 앞선다. 물론 로파심이라 할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강압을 시행한다면 돌밑에서 억눌려있다가 끝끝내 삐여져 나온 콩싹처럼 비뚤어질수도 있으니 그야말로 호미난방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성취욕이 있다. 즉 누구나 자기의 인생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산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살고 일하고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공부하고있다. 이는 심리학상식에 어긋난다. 공부시키는 부모나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늘 전전긍긍하게 되니 고달플수밖에 없다. “어디에 압박이 있으면 어디에 반항이 있다.”고 했듯이 아이를 무작정 억누르면 아이의 심지는 더구나 뒤탈린다.
    소학교단계에서는 학부모나 교원은 절대적권위요 강자로 군림하기에 약세군체인 아이들은 비교적 은페적인 저항을 시도한다. 례하면 학습에서“소극적태만”을 부리는 등, 그래서 거의 모든 부모들이 아이가 총명하고 무엇이나 다 아는데 느린게 탈이라고, 숙제도 질질 끌면서 하고 얼른 해치울수 있는 일도 재낄손이 없다고 걱정한다. 
    그렇지만은 않다. 기실 아이들의 천성은 십중팔구가 조급정서로 넘치고 모험적이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제놀음에는 우리 말로“느렁채”가 있는가? 없다. 아주 적극적이고 기민하다. 그러다가도 공부소리가 나오면 김빠진 자전거바퀴처럼 잘 굴러가지 않는게 문제다. 이런 현상을 나도 손자에게서 각일각 확인하고있다.
     아이들의 심리와 개성발전에서도 12세후부터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것은 세상에 어섯눈을 뜨고 생리상에서 점차 성숙되고 아는게 차차 많아지면서 어른들에게 도전할수 있는 기초를 구비하였기때문이다. 원래 품행도 좋고 공부도 잘하던 아이라도 12세후에는 역전할수 있다는것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역전향하는 방식에는 자아강박관념이라는게 있는데 아이들속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소년들은 보통 어버이가 생각하는것보다 3년 빨리 어른이 되였다고 생각한다. 그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2년뒤에 어른이 되는데도 말이다. 그처럼 조기에 사춘기를 맞으면 독립의욕이 더 강해져서 부모와 권위에 반항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성장했다는것을 과시하려든다. 일반적으로 소학교단계에“압박”을 받은 아일수록 중학교시기에“반역”하기 쉽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방황하는 마음을 컴류터나 스마트폰에 매달고 유희를 놀거나 게임에 심취되고 미구에 중독된다. 나의 손자가 12살을 먹으면서부터 이런 증세가 보였다. 수십일간의 여름방학 날마다 컴퓨터에 매달려 제정신이 아니다. 강압수단을 쓰면 오히려 왜지밭으로 갈가봐 주말마다 태권도관 다녀오고 하루건너 수영장에 끌고가면서 겨우 말려내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면 더 우심해질수 있다.
    자아강박관념으로 반항하는 아이들에 대해 막무가내이지만 더욱 두려운것은 다른 류형의“반항아”들이다. 그런 애들은 12세후 한평생 간직해야 할 전통적인 가치관념을 돌연적으로 버리고 새롭고 남다른 생활방식을 추구하려 들기때문이다. 즉 유별나게 옷탐을 하고 녀자애들 경우 머리꾸밈새에 신경을 쓰고 놀음방식상에서 괴이한 성향을 보이는 등등으로 부모들의 생활가치관에 대항한다.
    물질생활이 날로 풍족해진 현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주입하기 어려운 품성은 근검소박이다. 나는 손자에게 외모는 단정하게 가꾸어야 하지만 어릴때부터“멋따개”가 되면 훌륭한 사람이 못된다고 훈계하면서 옷도 생기면 생기는대로 입게 하고 신도 웬간하면 내손으로 수리해서 신을수 있을 때까지 신게 한다. 아이에게 요구는 높일수는 있지만 강요하고 억압한다면 역반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무조건적 순종은 가장 소중한 자신심을 꺾어놓는것이고 그러면 약자의 비애를 너무 일찌기 느낄수 있다.
    열두살, 교육의 보리고개를 어떻게 무난히 넘길것인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희망이 없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고 가장 비참한 인생은 가지지 말아야 할 돈을 나쁜 수단으로 챙기다가 일생을 망치는것이라고 귀에 못박히도록 훈계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놓아두는 푼돈을 욕심내지 않는다. 저절로 먹을것을 사고 결산하는것도 사회실천이기도 하지만 너무 일찍 돈쓰는 재미를 맛보게 할 필요가 없다.
    부모는 자식이라는“양”의 방목군이 아니라 심령의 수호자가 되여야 한다. 아이들의 자유적성장은 사회정의자로 되여지는 초석이고 창신력개발의 전제조건이며 한생의 필수적조건이다. 억압을 느끼지 않고 자라난 아이라야 진실한 인생과 인간군, 사회에 애심을 가지고 옳바르게 림할수 있다.  


                               201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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